10년이 넘도록 색띠를 그려 온 하태임 작가

내게 색은 감성적 공간건축의 재료

‘하얀 캔버스는 진짜 그림을 덮고 있는 한 겹의 먼지 층이다. 이 먼지를 닦아내기만 하면 된다. 붓을 들어 파란색으로 한 번, 녹색으로 한번, 그렇게 다 닦아냈을 때 그림이 드러난다.’

조르주 브라크의 말이다. 화려한 색의 띠들로 환상적인 실크로드를 구현하는 ‘컬러밴드’ 작가 하태임(45)도 그렇게 작업한다. 그러다 보면 색의 울림이 감성적 공간을 만들어 낸다.

“10년이 넘도록 색띠 만을 그려 왔어요. 제게 색은 감성적 공간건축의 재료지요.”

5월4일까지 한남동 갤러리조은에서 열리는 그의 ‘Spring Sonata’전은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리다.


봄을 그대로 연상케 한다는 베토벤의 명곡 스프링 소나타(Spring Sonata)와 같이 작가 고유의 아름다운 ‘색띠’의 향연을 맛볼 수 있다. 겨우내 잎을 떨구었던 나무에서 신록이 솟아나는 에너지를 느끼게 해준다.

베토벤의 곡이 각각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연주될 때 닮은 꼴 다른 곡의 느낌을 주듯, 작가의 ‘통로(Un Passage)’ 시리즈 역시 그러하다. ‘감성의 소통통로’라는 하나의 의미를 추구하며 인간의 사고와 정서, 느낌과 기분을 각각의 ‘색’에 담아 다양한 스토리를 감각적으로 구현해 낸다.


하태임의 추상작업은 유학 시절 표현주의 화풍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머릿속에는 온통 ‘소통’(疏通)의 개념으로 가득 차 있었고 가슴은 형상화를 위한 욕구로 두근거렸다. 작업실 이곳저곳에 놓인 캔버스들에는 ‘소통’을 형상화한 문자와 부호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가는 문득, 진정한 ‘소통’은 지식이나 언어 그리고 문자가 아님을 깨닫고, 문자와 부호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면서 지금의 컬러밴드와 조우하게 된다.

‘컬러밴드’ 저마다의 색들은 생명의 율동으로, 생명 근원에 대한 환희를 환기시켜준다. 적절한 깊이감과 유쾌함이다. 수십 번의 붓질을 통해 가득 채워진 색들은 해맑고 곱게 어울려, 컬러 판타지를 연출한다. 즉흥으로 붓을 놓은 위치에 따라 그은, 아크릴릭 물감의 곡면 색띠(color bend)는 덧칠을 반복해 밀도 높게 도톰하다. 획 마다 한 뼘의 너른 붓끝 자국을 따라 미려한 떨림이 스친다.

작가가 매일 일기를 쓰듯 물감을 올리는 행위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십년이 넘도록 휘어진 곡면의 색띠만을 그려왔다. 그것들을 모으기도 하고 흐트러뜨리기도 하고 단순한 형태의 띠만으로 화면을 구성하지만 선택의 기로에서는 여전히 색의 다채로움 앞에 안절부절이라고 이야기 한다. 지친 일상 속에서 마치 한차례 태풍이 지나간 뒤 고요함이 찾아오듯 잠시 숨을 고르며 오늘도 그만의 색띠를 마주한다.

편완식 객원미술전문기자

■하태임 작가는?

하태임 작가는 프랑스 디종 국립미술학교와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전공)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 옥션 강남점, 파리 시떼 데자르, 베이징 갤러리 아트사이트 등 국내에서 총 23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0여회의 단체전과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1999년 모나코 왕세자 재단에서 선정한 모나코 국제 현대 회화전 모나코 왕국상을 수상했다.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모나코 현대미술관, 태평양 아모레 뮤지엄, 양평군립미술관, 삼성전자, LG전자, 두산그룹, 고려제약, 녹십자, 서울가정행정법원, 한국전기안전공사 신사옥, 서울동부지방법원 신청사 등에 작품들이 소장 되어있다.